숭성각은 시조왕의 신도비(神道碑)를 보호하기 위한 집이다.

숭성각 안에는 시조왕의 신도비가 있는데 높이가 약 3m 넓이는 약 1m 두께는 약 50cm 정도과 되는 굉장히 큰 비석(碑石)이 세워져 있다.

이 비(碑)는 서기 1751년부터 시작하여 1761년에야 세워졌는데 무려 10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으며 

10년 동안에 이 일의 지휘는 경주부윤(慶州府尹) 4명이 이어 받으면서 공사를 마쳤다.

또 비를 만드는 돌은 경주 남쪽 70여리 떨어진 치술령(鵄術嶺)에서 채석(採石)했으며, 

경주까지 운반하는데는 11개 고을의 스님 1,500명이 동원되었고, 약 3개월이나 걸려서 시조왕의 능소(陵所) 부근까지 옮겨졌다.

서기 1759(영조35) 1월에 경주부윤 윤학동(尹學東)이 조정의 명을 받고 두개석(頭蓋石)과 좌판(坐板)을 운치해왔다. 

그 동안 공사가 부진(不振)했던 것은 가뭄이 몇 년씩 계속되는 속에서 비석 세우는 일에만 매달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. 

서기 1761년 10월에 비각(碑閣 : 비를 보호하는 집) 짓는 공사를 시작해서 그 해 12월에 공사를 미쳤다. 

비문(碑文)은 그 때 당시 홍문관(弘文館) 대제학(大提學)으로 있던 조관빈(趙觀彬)이 짓고 

판부사(判府事)로 있던 유척기(俞拓基)는 제목글자를 쓰고 의금부사(義禁府事) 홍봉조(洪烽祚)는 비석 글씨를 썼다.